[김과장&이대리] '조물주 위 임대주'라던데…툭하면 연체, '월급 같은 월세'는 남 얘기

입력 2016-12-19 18:38  

월급쟁이들의 재테크 수난기

'슈퍼개미' 꿈꾸며 추천주에 '몰빵'…이 회사가 그 회사가 아니라고요?

1% 예금금리에 주식 눈 돌렸는데
"힐러리 당선된다" 태양광주 샀다 1년간 번 수익 하루만에 다 날려
비슷한 사명에 엉뚱한 곳 투자도

수익률 앞에 무너진 애사심
경쟁사의 쇼핑몰 개발지역 인근에
부동산 투자한 뒤 남몰래 응원



[ 이수빈 기자 ]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도 재테크를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재테크의 역사는 유구하다. 《조선 양반가의 치산(治産)과 가계경영》에 따르면 양반들은 토지와 노비 등 재산을 거래해 이득을 봤다. 부동산 디벨로퍼처럼 직접 토지를 개간해 재산을 불리기도 했다.

오늘날 직장인에게 재테크는 필수가 됐다. 월급만 모아서는 내집 마련은커녕 내몸 하나 보전하기도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다. 서점에서는 부동산·주식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아파트 청약도 넣어보고 결합상품에도 가입해보지만 재테크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직장인들의 좌충우돌 재테크 수난기를 들어봤다.

동원그룹인 줄 알았는데 …

국내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장모 대리(33)의 올해 재테크 실적은 좋지 않다. 올해 초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동원시스템즈에 투자했다가 아직 주식을 팔지 못하고 있어서다. 장 대리는 동원시스템즈 주식을 사기 전 지인으로부터 “동원이라는 회사가 괜찮다. 주가가 많이 오를 것”이라는 정보를 들었다.

그는 당연히 ‘동원’은 참치로 유명한 동원그룹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동원그룹 관련 상장주식을 찾다가 동원시스템즈에 투자하게 됐다. 주당 평균 매입가격은 8만원 선이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계속 떨어지기 시작했다. 3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주가가 7만원까지 내려갔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지인에게 “주가가 언제쯤 오르냐”고 다시 물었다. 그때야 장 대리는 지인이 추천한 주식이 ‘동원그룹주’가 아니라 유가증권 상장사인 ‘동원’임을 알게 됐다. 동원은 동원그룹과는 무관한 주식이다. 이 회사는 골재사업을 하는 업체로 현재 사모펀드(PEF)가 대주주로 있다. 올해 초 2만원대였던 동원의 주가는 현재 4만3000원 선으로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그는 “지금은 주가가 6만원대로 떨어져 비(非)자발적 장기투자자가 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반대 사례도 있다.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윤모 이사(35)는 ‘주식명’ 때문에 이득을 본 케이스다. 그는 지난해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MBK에 투자했다. 아이돌그룹인 티아라의 소속사로 “엔터테인먼트주가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투자한 것이다. 투자 직후인 8월부터 회사의 주가는 계속 오르기 시작했다. 윤 이사는 “잘 판단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주식이 오른 이유는 회사 자체 성과보다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 때문이었다. 당시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인수전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고, 결국 인수에 성공했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는 MBK파트너스를 코스닥 상장사인 MBK와 혼돈했고, 이로 인해 MBK 주가가 계속 상승한 것이다.

힐러리 당선 믿고 투자했다가 ‘쪽박’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재테크에 영향을 미칠 때 사람들은 당황한다. 대기업의 정보기술(IT) 서비스 자회사에 다니는 송모 차장은 미국 금리 인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는 며칠 전 ‘20년 무주택 설움’을 벗기 위해 서울 송파구에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분양가가 평당 2500만원에 달하다보니 여러 날을 고민하다 분양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3억원가량 돈이 모자라 대출을 알아보던 와중에 이달 16일 미국의 금리 인상 소식을 들었다.

내년에도 세 차례나 더 인상하겠다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예고에 당장 시장금리는 들썩이고 상담했던 대출중개사들은 인상된 금리를 들이댔다. “과연 지금 시점에 신축 아파트를 계약한 게 맞는 일일까.” 그는 요즘 답답하다. “나이 40에 처음으로 집을 샀는데 며칠 만에 금리가 오르니 깜짝 놀랐습니다. 금리 인상과 악화된 거시경제 전망, 인구 감소 등 여러 요인 때문에 밤잠이 안 오네요. 진작부터 경제지를 자세히 읽을 걸 그랬어요.”

미국 대선 때문에 주식 투자에 낭패를 본 직장인도 있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김모 대리(30). 연이율 1%를 겨우 넘는 은행 예금에 답답함을 느낀 그는 거의 모든 재산을 주식에 투자했다. 올해 꾸준히 수익을 내던 김 대리는 지난 11월 미국 대선 때문에 큰 손실을 봤다. 그는 지난달 초 태양광 사업을 하는 한 화학업체 주식에 투자금의 3분의 1가량을 부었다. 당선되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기업에 전폭적으로 투자하겠다고 공약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을 뒤집고 지난달 8일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다.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는 사기”라며 화석연료 사용 확대 정책을 펼치겠다고 공약해왔다. 같은 날 김 대리가 투자한 종목은 15%가량 급락했다. “올해 주식으로 벌었던 돈을 모두 태양광주에서 날렸습니다. 큰 수익을 내서 따뜻한 겨울을 맞고 싶었는데 지금도 아쉽네요.”

재테크 때문에 경쟁사 응원

재테크를 하다 보면 네 편이 내 편이 되기도 한다. 전자부품업체에서 일하는 정모 과장은 올 한 해 경쟁사를 자신이 다니는 회사 이상으로 응원했다. 같은 업계 사정에 밝다보니 경쟁사의 올해 전망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해 경쟁사 주식에 가지고 있던 비상금 500만원을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올 2분기에 업계 전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도 정 과장은 경쟁사의 실적 회복을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그는 “생각보다 실적 회복이 신통치 못해 수익률도 높지 않았다”며 “올 한 해는 재테크 때문에 경쟁사를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이중간첩’으로 지낸 거 같다”고 했다.

유통업계 대기업에서 일하는 박모 대리도 경쟁사를 응원하고 있다. 그가 최근 얻은 신혼집 근처에 경쟁사 복합쇼핑몰이 들어설 계획이어서다. 그는 복합쇼핑몰이 예정대로 문을 열면 아파트 가격이 최소 1억원 이상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요즘 이 경쟁사가 ‘최순실 사태’에 간접적으로 연루됐다는 의혹성 신문 기사가 나올 때면 가슴이 철렁한다. 혹여나 쇼핑몰 개발 계획이 무산되거나 불매운동이라도 벌어질까봐 마음을 졸이고 있다. “회사에 가끔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경쟁사가 부디 악재를 잘 이겨내고 쇼핑몰 사업을 성공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임대주 되기도 힘드네

‘조물주 위에 임대주’라지만 이것도 쉽지는 않다.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김모 부장은 내년이면 50대로 접어든다. 몇 년 전부터 노후 준비를 해왔다. 작년엔 큰맘 먹고 서울 변두리 역세권에 오피스텔 세 채를 샀다. 거의 전 재산을 털어넣었지만 꼬박꼬박 들어올 월세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월세 받기가 너무 힘들어서다. 한 집은 매달 월세 기한을 넘겨 꼭 채근해야 보내기 일쑤다. 한 집은 월세를 몇 달 안 내더니 이젠 연락조차 잘 안 된다. 꼬박꼬박 세를 보내는 건 한 집뿐이다. 하지만 재산세 등 세금은 계속 내야 한다. 또 “보일러가 안 돌아간다” “도어록이 망가졌다”는 연락은 수시로 온다.

“월세를 계속 안 내는 집에 가 보니 문 앞엔 가끔 왔다 간 흔적만 보이고 이러다 소송까지 해야 할 판입니다. 월세 받는 게 편할 줄 알았더니 세상에서 제일 편한 건 월급쟁이인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하는 게 최고의 노후 대비네요.”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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